창업멤버 4년, 백수 5개월 차.
때는 22년 10월, 창업멤버로서 긴 시간을 함께 한 스타트업을 뒤로한 채 비로소 백수 신세가 되었다. 역시 노는 게 최고다. 누가 사람이 일(만)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 했는가?
스타트업에 있다 보면 문제에 또 문제에 또 문제밖에 없다. 해결책을 찾겠다고 공부하다 새벽에 잠들고, 앞으로 그리고 당장 내일은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고,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느라 휴일에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게 일상이었는데(내가 그리 영향력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지라 매사 열심이었던 걸 회사가 알아줄지는 모르겠지만) 이 모든 게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니 적응하는데 한 달은 애를 먹었다. 허전하기도 하고, 뭐라도 하려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건지 아님 강박이 되어버린 건지.
하여튼 나는 어느 하나에 집중하면 그 외의 것들은 잘 돌아보지 않는 편이라. 이번만큼은 반드시 회사를 그만두고 충분한 휴식과 함께 스스로를 다듬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계획된, 의도적인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 휴식이 백수를 포함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요즘 잘 먹고 잘 쉬어 배에 기름이 진 듯하다.
어느덧 경력은 10년차. 나도 모르는 새, 엄청 길지는 않지만 스스로 체감하기에 부담스러운 숫자가 되어버렸고, 수년 전부터 가지고 있던 ‘나는 앞으로 어떤 커리어를 쌓을 것인가?’ 에 대한 고민도 과거와는 달리 찾아와버린 듯하다. 이젠 보다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 걸까?
최근 1–2년은 제품을 위해 Product Owner(라기엔 비슷한 그 어딘가)의 역할을 자처하며 FE 개발에서 멀어졌고, 고객 경험과 DesignOps를 위해 힘썼으며, 퇴사를 앞둔 시점에선 어쩌면 CPO를 맡을 수도 있었다. 결국 다 내려놓고 개발자이기를 택했지만.
언제 또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IC 보단 Engineering Manager의 길을 생각하고 있다. 개인이 아니라 팀을 성공으로 이끌고 싶달까. 예상 외로 적성에 맞는 것 같은데, 평소엔 남에게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지만, 이게 일이 되니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게 된다. 어쩌면 내가 UX에 관심이 많았던 것도 실은, 사람에 대한 이해가 흥미로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팀과 동료가 성과를 내면 뿌듯한 게, 마치 타이쿤 게임 같기도 하고.
하지만 당장은 아니고, UX 팀을 이끄는 동안 개발자로서는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었으니 더 높은 수준의 회사에서 보고 배우고 나 또한 공유하고 싶다. 매니저로서 좋은 사람이 된다 한들, 기술적으로 배울 것이 없는 리더는 주니어에게 매력이 없다는 것을 안다. 물론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닐 테지만, 나조차 갈증을 느끼는데 어떻게 동료들에게 만족을 줄까.
아무튼, 글이 길어지니 이쯤에서 마무리하려는데, 결론은 오늘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공부한 내용들을 드물게라도 기록해보려 한다. 마침 읽고 페이스북에 공유해둔 글들이 아깝기도 하고. (근데 백수가 되니 글을 잘 안 읽게 된다)
다시 열심히 하길 다짐하며.
사실 1년 더 놀고 싶다. 영어학원 다닐까…